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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미사강론

설립미사강론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 1코린 1,24


저는 지난번 서울대교구 인사에서 대안학교 담당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교구장님과 사회 복지시설에 사는 학생들을 위한 음악학교 설립에 관한 협의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그리고 이 학생들을 만난 지 4년 만의 결과였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랄 수 있으나 "새로운 도전"이라는 차원에서는 많은 생각과 나름의 고뇌가 녹아있었던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학생들과 만남이라는 면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결단의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임명을 받기까지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만, 오늘의 결과는 모두 우리 노비따스 어린이 합창단 덕이고, 또 그동안 함께해준 소리 없는 봉사자들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비따스 어린이 합창단과 봉사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 발령이 사제 생활의 "마지막 발령"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이미 이 아이들은 제 마음 안에 들어와 있고, 또 미약하지만 이들과 함께하는 삶이 제가 갈 길이라고 수없이 생각해왔습니다. 복지시설의 학생들이 단 한 명이라도 이 학교를 통해 치유되고 자립을 준비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지 지금부터 가슴이 떨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 해결하고 준비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지만,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흔들림 없이 걸어갈 생각입니다. 여러분도 함께해 주십시오.

노비따스 음악 중.고등학교는 복지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중고등 통합 과정의 학교입니다. 음악적인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을 발굴 선발하여 사회에서 두 발로 우뚝 설 수 있는 음악인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전문 음악학교를 지향합니다. 기숙형 학교로서 우리 학생들이 비록 가정이라는 울타리 없이 살아왔지만 한 분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신앙의 가정을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이들이 무책임하게 이 세상에 내던져진 첫 번째 시련을 겪었다면, 고등학교 졸업 후에 다시 또 냉혹한 사회로 내던져지는 두 번째 시련을 극복해 낼 수 있도록 돕고 함께 하는 학교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분명 치유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겪었던 첫 번째 시련에 대한 것입니다. 첫 번째 시련을 받아들이고 인정함으로써 치유의 첫 발걸음을 시작하는 치유의 학교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동안 합창단을 통해 보여주었던 엄청난 잠재력을 발굴하고 갈고닦아내는 준비와 성장을 위한 학교를 이뤄내도록 하는 도움의 학교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노비따스 음악 중.고등학교는 '치유와 자립'을 돕고 함께 하는 학교요, 학생 스스로가 일궈나가는 새로운 도전과 도약을 위한 시험장이며, 삶의 요람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새로움'과 '입신양명'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단어 'NOVITAS'를 교명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이 학생들, 아니 우리 아이들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배운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거친 듯하면서도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을 보았고, 산만해 보이면서도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말썽도 부리지만 온갖 어려움을 참아낼 줄도 아는 인격자들이었습니다. 어른의 시각이 아니라 이 아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착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아이들과 만나면서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이 느꼈던 뜨거운 감동과 같은 것을 체험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조금만 더 개별적인 관심과 배려를 나눈다면 외면적인 조건을 뛰어넘는 훌륭한 잠재력의 소유자가 우리 아이들이었습니다.

자식이 없는 저에게 아버지성을 느끼게 해준 선생님과 같은 존재가 바로 이 아이들입니다. 그동안 모르거나 잊고 살았던 저 자신의 모습을 이끌어내 준 아이들입니다. "아,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는 발견의 기쁨과 새로움을 더해준 훌륭한 아이들입니다. 그러면서 진실한 관계가 주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아이들입니다. 지난 어버이날에 받은 편지 한 장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어버이날을 축하드려요. 지금껏 노비따스 생활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했어요. 신부님께서 안 계셨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나에게 이런 면이? 하면서 몰랐던 저의 또 다른 모습을 찾게 되었고, 또 합창을 하면서 협동심도 배우고 함께 어울리며 밝은 아이로 탈바꿈하게 되었답니다. 가끔 힘든 일이 있으면 신부님의 유쾌하시고 밝으신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고, 가끔 지칠 때 신부님을 보면 왠지 든든함이 느껴져요. 그리고 항상 저희를 생각해 주시는 신부님께 정말 감사드려요.저희가 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저희는 아버지 같은 신부님을 통해 가족이 되었어요. 신부님은 항상 저희의 아버지이세요. 어버이날을 축하드리고 저희랑 오래오래 살아요." 여러분, 부럽지요?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사실 제가 한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저에게 준 것은 엄청난 감동과 기쁨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공감을 나누며 '피는 나누지 않은 사이지만' 그 이상의 신뢰를 나누어주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결국, 이 아이들은 저의 사제 인생까지 바꿔버렸습니다. 그래서 대안학교 발령은 저의 사제 인생에서 마지막 발령이 된 것입니다.

저는 참 행복한 신부입니다. 여러분을 이런 행복에 초대합니다! 앞으로 노비따스 음악 중.고등학교는 베네수엘라 빈민가에 방치된 위기의 아이들을 오히려 고단한 세상에 희망을 전파하는 오케스트라로 키웠던 엘 시스테마의 아름다운 음악 혁명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내전과 질병으로 신음하는 아프리카 수단의 아이들에게, 약으로도 치료받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었던 고 이태석 신부님의 브라스 밴드를 재현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뤄낸 기적과 같은 현실의 반전을 이루도록 우리 만남의 의미와 삶의 참다운 목적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여기 우리 곁에서, 어려운 상처가 있지만 음악가의 꿈을 키워나가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기도와 용기를 나누어주시기를 청합니다. 작지만 아름다울 수 있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초라하지도 않은 이 학교의 지향에 함께 해주시길 청합니다. 아멘.


2014. 10. 12. 국군중앙성당
노비따스 음악 중.고등학교 설립미사 강론